“SNS가 인생을 삼켜버린 현실적인 재난”
1. 조용한 격돌의 시작: 평범한 사람의 흔들리는 일상
2018년 런던. 이른 아침, 도심 속 택시 한 대가 뿌연 하늘 아래를 미끄러지듯 달린다. 운전석에 앉은 남자, 크리스는 한눈에 봐도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그는 매일 같은 장소에서 손님을 태우지만, 그 목적은 단순한 생계유지가 아니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그의 시선은, 표면의 평온함과는 다르게 복잡한 내면을 암시한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 거대 SNS 기업 ‘스미더린(Smithereen)’의 임직원을 차에 태우는 것이다. 겉으론 단순한 우버 운전처럼 보이는 그의 일상이, 사실은 집요하게 계산된 계획의 일환이라는 게 서서히 드러난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날 한 직원을 태우게 되면서 이야기는 급격하게 폭주한다. 그는 차량을 납치하고, 총을 들이댄 채 스미더린 본사와 접촉을 시도한다.
2. 줄거리가 전개되는 속도감: 납치극과 내부 알고리즘의 충돌
처음엔 단순히 광기에 사로잡힌 한 남자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에피소드는 빠르게 방향을 튼다. 스미더린 내부의 대응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이 특히 흥미롭다. 런던 경찰은 사건을 수습하려 하지만, 사건의 핵심은 경찰의 관할 밖에 있다. 범인의 신상과 동기를 가장 먼저 파악한 건 다름 아닌 스미더린 본사의 AI 알고리즘과 고객 행동 데이터팀이었다.
이 장면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정체성을 너무나 날카롭게 꼬집는다. 범죄자의 위치, 취향, 패턴을 경찰보다 기업이 먼저 파악한다는 사실은, 이제 국가보다 플랫폼이 더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3. 과거의 비극, 그리고 ‘좋아요’의 무게
크리스는 왜 CEO를 찾는가? 드라마는 이 질문에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다가간다. 사건의 핵심은 그가 사랑했던 여자친구의 죽음이다. 교통사고였다. 운전 중 스마트폰 알림을 확인하려다 한순간 시선을 돌렸고, 그 작은 ‘찰나’가 모든 것을 바꿨다. 더 끔찍한 건, 그는 자신이 직접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인정하지 못했다.
“운전 중 잠깐 봤을 뿐이야. 누구나 그러잖아.” 이 말은 너무나 익숙한 자기 합리화이며, 동시에 우리가 매일 하는 행동이다. 이 에피소드는 크리스의 입을 통해 말한다. "그 몇 초의 알림이 전부였다. 그건 그냥 좋아요 하나였고, 리트윗 하나였고, 하트 하나였다." 하지만 그 작은 ‘터치’가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남은 사람의 삶 전체를 무너뜨린다.
4. 스미더린의 CEO: 침묵의 신, 무력한 창조자
한편, 미국 사막에서 수행 중이던 스미더린 CEO ‘빌리 바우어’는 회사에서 긴급 호출을 받고, 곧바로 크리스와 통화한다. 여느 블랙미러처럼 이 장면은 강렬한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SNS의 황제로 묘사되던 그가 실상은 자기가 만든 괴물에 질려 숨어버린 인간이라는 사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플랫폼을 통제하지 못한다.
크리스는 그에게 묻는다. “당신은 이걸 멈출 수 있었잖아.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이에 빌리는 침묵한다. 그리고 “난 그걸 통제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이 장면은 현대 기술의 핵심 문제를 요약한다. 인간이 만든 기술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면서도, 그 책임은 여전히 창조자에게 있다는 사실.
5. 결말: 우리의 일상은 어디로 연결되고 있는가
결국 크리스는 스스로를 향해 총을 겨누고, 화면은 꺼진다. 총성이 들리지만, 명확한 결과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 장면 이후, 전 세계 사람들의 스마트폰 화면에 주목한다. 지하철, 길거리, 카페… 누군가는 알림을 확인하다 말고, 다시 화면을 끄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 장면은 너무나 조용하지만 강력한 질문을 던진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이 화면은 어디로 이어지고 있는가?"
6. 현실을 집어삼킨 SNS: 블랙미러가 던진 경고
‘스미더린’은 블랙미러 특유의 디스토피아적 장치 없이, 너무도 ‘현실적인 불편함’만으로 긴장을 이끌어낸다. 이건 더 이상 미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손안의 스마트폰, 하루 수십 번 무의식적으로 열어보는 앱, 익숙한 붉은 알림. 이 작은 신호 하나가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을 휘청이게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드라마는 테크놀로지가 악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사용하는 우리의 습관, 무관심, 합리화가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피해는 대개 너무 늦게 깨달은 다음에야 비로소 실감된다는 점에서 더욱 절망적이다.
7. 마무리하며: 우리는 누구를, 무엇을 ‘팔로우’하고 있는가
‘Smithereens’는 거대한 폭발 없이도, 극적인 반전 없이도 충분히 우리를 흔든다. 크리스라는 한 개인의 파멸은 특수한 비극이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소한 실수에서 비롯된 현실적 재난이다. 그리고 그 뒤엔 거대한 SNS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다.
‘SNS가 인생을 삼켜버린 현실적인 재난’이라는 말이 더 이상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매일같이 ‘누군가의 피드’를 보며 살고, ‘좋아요’라는 감정의 대체물을 누르며 관계를 유지한다. 그 과정에서 정작 자신의 삶은 얼마나 제대로 바라보고 있을까?
이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잠시 생각해보자. 우리는 지금 누구를, 무엇을 팔로우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