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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미러 S5E2 ‘Striking Vipers’ : 현실보다 더 진짜 같은 욕망, 가상현실은 어디까지 용서될 수 있는가? 리뷰

by 아더사이드 2025. 7. 3.

1. 오래된 친구, 낯선 접속

대니와 칼, 두 남자는 대학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였다. 젊고 혈기왕성하던 그들은 밤이면 밤마다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라는 격투게임을 함께 즐기며 형제 같은 유대를 쌓아갔다. 시간이 흘러, 대니는 결혼하고 아이를 가졌지만, 칼은 여전히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간다. 이들의 삶은 어느 순간부터 엇갈리기 시작한다.

10년 뒤 생일 파티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 칼은 대니에게 최신 VR 게임기를 선물한다. 그것은 예전 그들이 열광했던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의 가상현실 버전이었다. 첨단 기술로 구현된 이 VR은 단순한 조작이 아니라, 몸과 감각 전체로 접속해 싸움과 세계를 ‘체험’하게 해준다. 두 사람은 추억을 되살리며 게임 속 세계로 뛰어들고, 예전처럼 캐릭터를 선택해 대련을 시작한다.

그런데 싸움은 곧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격투 도중, 칼의 캐릭터(여성)와 대니의 캐릭터(남성) 사이에 강렬한 키스가 오간다. 물리적 접촉은 현실이 아니지만, 그들이 느낀 쾌감과 혼란은 실제였다.

2. 게임인가, 외도인가: 경계의 붕괴

다음날 두 사람은 아무 일 없던 듯이 일상을 살아가려 하지만, 둘 다 잊을 수 없다. 다시 게임에 접속한 그들은 이번엔 주저 없이 성적 관계를 맺는다. 문제는, 이 행위가 현실의 불륜인가, 아니면 단순한 디지털 체험인가 하는 점이다.

드라마는 이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다. 대니는 가정을 꾸린 유부남이다. 아이도 있다. 아내 테오는 남편이 어딘가 멀어졌다는 걸 느끼고 있지만,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는 바람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외출도 없다. 다만 밤이 되면 방에 혼자 들어가 ‘게임’을 할 뿐이다.

여기서 드라마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가상현실의 윤리적 경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육체적 접촉은 없지만, 감각은 있다. 사랑은 없지만, 중독은 존재한다. 결국 이 관계는 대니와 칼 둘 다의 현실을 침식시켜 가며, 그들 삶에 균열을 일으킨다.

3. 가면을 쓴 감정: 욕망은 형태를 바꾸며 살아남는다

‘Striking Vipers’는 단순히 가상현실 속 성적 관계를 그린 드라마가 아니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욕망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언제부터 외도이며, 언제까지 인간적인가?

두 사람은 한 번은 현실에서 직접 키스를 시도해보지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이 원했던 건 상대가 아니라, 가상 캐릭터를 통한 감각의 교차였다. 이 장면은 굉장히 아이러니하면서도 슬프다. 정체성, 성적 욕망,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두 뒤섞인 가운데, 결국 남는 건 깊은 고독이다.

이러한 심리적 고립은 대니의 아내 테오에게도 다가온다. 그녀는 남편이 자신에게 정서적으로 멀어진 걸 느끼고, 대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대니는 끝까지 모든 걸 말하지 못한다. 그는 어떤 비밀도 없다는 듯 말하지만, 침묵의 공기 속엔 엄청난 진실이 숨어 있다.

4. 관계의 새로운 형태, 그리고 타협

이야기의 마지막, 대니는 진실을 고백한다. 완전한 진실은 아니지만, 감정의 핵심은 전달된다. 그리고 드라마는 예상 밖의 결말을 보여준다. 1년에 한 번, 대니는 다시 게임에 접속해 칼과의 관계를 이어간다. 대신 아내 테오도 같은 날, 혼자만의 외출을 허락받는다. 이들은 말하자면 ‘협상’을 통해 삶을 이어가기로 한 것이다.

이 장면은 도덕적 해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현대의 부부 관계와 인간 욕망이 얼마나 유연하게 진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충격적이지만, 동시에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욕망은 틀 안에 가둘 수 없고, 사랑과 충실함의 정의조차 재구성될 수 있음을 이 드라마는 조용히 말한다.

5. 인간은 언제나 허기를 감춘다

‘Striking Vipers’는 감각적으로 화려한 에피소드가 아니다. 오히려 정적인 장면과 침묵이 많은 구성 속에서, 감정의 파장을 천천히 풀어낸다. 등장인물은 많지 않지만, 각자의 욕망과 외로움은 무겁고 현실적이다.

이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은 기술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기술은 인간 욕망의 반영일 뿐, 문제는 그 욕망을 어떻게 다루는가”라는 점을 강조한다.

VR이라는 새로운 방식이 욕망을 자극하긴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늘 존재했던 인간 내면의 갈증이다. 현실 속 고독, 나이 들어가는 몸, 잊힌 자아, 점점 줄어드는 짜릿함. 그런 모든 감정이 고스란히 캐릭터를 통해 분출된다.

6. 마무리하며: 우리는 진짜를 원하는가, 아니면 진짜 같은 것을 원하는가?

‘Striking Vipers’는 우리가 ‘진짜’라고 믿어왔던 감정과 관계의 형태에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감정인가?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는가, 아니면 그 사람과 연결된 감각과 이미지를 사랑하는가?

에피소드는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정답은 없지만, 선택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더 인간다워져야 한다. 하지만 ‘인간다움’의 정의조차 변해가는 지금, 우리는 여전히 무엇을 쫓고 있는가? 사랑인가, 욕망인가, 혹은 기억 속의 어떤 환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