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세 사람을 죽이는 겁니다”
1. 평범했던 하루, 피로 물들다
1979년 영국 북부. 인도계 여성 님라는 백화점 구두 코너에서 조용히 일하는 판매원이다. 겉보기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이지만, 일상 속에 녹아든 인종차별과 혐오, 그리고 억눌린 분노는 그녀를 조금씩 무너뜨리고 있다.
어느 날, 님라는 구두 가판대 아래에서 이상한 흰색 부적을 발견하고, 실수로 피를 묻히자 눈앞에 악마 ‘가우탄’이 나타난다. 그는 70년대 디스코 스타처럼 행동하며 님라에게 미션을 전달한다. “앞으로 3일 안에 세 명을 죽이지 않으면 세상이 끝장난다.”
2. 악마와 인간, 도덕의 줄타기
님라는 혼란에 빠진다. 정신 착란인지 의심하지만, 가우탄은 실제로 물리적인 힘을 보여주며 임무의 진지함을 강조한다. 그는 자신이 단순한 악마가 아니라 차원을 넘어온 존재이며,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해 님라가 선택되었다고 주장한다.
지구의 미래는 그녀의 손에 달려 있다. 하지만 그녀 앞에 나타나는 대상들은 죄 없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도덕은 무엇인가? 정당한 살인은 존재하는가? 드라마는 이 질문들을 관객에게 던진다.
3. 선택의 기준은 도덕이 아니다
님라는 결국 자신이 ‘심판’이라고 믿으며 타깃을 선정한다. 가정폭력범, 성범죄자, 혐오정당 정치인 등 명백히 사회적으로 해악을 끼치는 이들이다. 그녀는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신념으로 살인을 실행하지만, 그 죄의 무게는 고스란히 그녀의 내면에 쌓여간다.
이 에피소드는 악마보다 더 무서운 존재는 자신을 ‘정의롭다’고 믿는 인간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는다. 가우탄은 유혹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조건을 제시할 뿐이고, 모든 선택은 인간 스스로 내리는 것이다.
4. 종말의 진실, 그리고 마지막 선택
세 번째 타깃은 극우 정당의 정치인이다. 그는 혐오와 배제를 선동하며 정권을 노린다. 님라는 마지막 날, 그를 따라가 칼을 꺼내지만 실패한다. 체포된 그녀는 구치소에 갇히고, 세상의 운명은 결정된 듯 보인다.
그러나 그 직후, TV에선 실제로 핵전쟁이 벌어지고 도시가 불타기 시작한다. 종말은 진짜였다. 가우탄은 나타나 말한다. “그래도 넌 잘 싸웠어.”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불타는 세상 속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5. 블랙미러인가? 새로운 형식의 변주곡
‘Demon 79’는 블랙미러 특유의 미래기술이나 디지털 비판 대신, 70년대 오컬트 영화 스타일과 블랙코미디로 구성되어 있다. 오프닝 타이틀조차 “블랙미러 리프레젠츠”로 달라지며 실험적인 형식을 예고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블랙미러적인 핵심은 살아 있다. 도덕의 유연성, 권력의 위험성, 인간 심리의 복잡성. “무고함이란 무엇인가?” “누가 정의를 실행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은 이 에피소드 내내 반복된다.
6. 마무리하며: 세상은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끝낼 뿐이다
이 에피소드는 어둡고 기괴하지만, 동시에 유쾌하고 풍자적이다. 님라의 선택은 ‘선한 인간’이 세상을 구하려 했던 이야기이자, ‘이 세상이 과연 구원받을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반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매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보다 ‘어디까지 참고 침묵할 것인가’를 더 자주 고민한다. 님라는 선택했고, 우리는 선택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진짜 종말을 기다리는 중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