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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특급 리바이벌 S1 E1 'Shatterday / A Little Peace and Quiet' 리뷰

by 아더사이드 2025. 7. 8.

🎭 두 이야기로 시작된 환상특급 리메이크

개인적으로 초등학생때 봤던 환상특급의 기억이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sf미스테리 류의 드라마를 이때부터 좋아하게 된건지 모르겠다. 블랙미러를 리뷰하고 이제부터는 환상특급에 대한 리뷰를 해보려 한다.

1985년, 고전 SF 앤솔로지 드라마 ‘환상특급’은 한층 어두워진 시대의 공기 속에서 리메이크로 돌아왔다. 그 첫 시작을 알린 에피소드는 두 개의 단막극 ‘Shatterday’와 ‘A Little Peace and Quiet’로 구성되며, 인간 내면의 불안과 사회적 소외를 초자연적 설정 없이 극적으로 그려낸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서로 다른 이야기 구조와 배경을 지녔지만, 결국 ‘통제의 환상’과 ‘고립의 공포’라는 근본 주제로 맞닿는다.

📞 Shatterday – 나보다 나은 내가 전화를 걸어왔다

도시 속 일에 치이며 살아가는 피터 제이 노백. 그는 자신이 꽤 잘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어느 날, 공중전화에서 자신의 집으로 잘못 전화를 건 순간, 모든 것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수화기 너머에 들린 목소리는 다름 아닌 ‘자기 자신’. 익숙한 어조, 지나칠 정도로 정확한 기억. 농담 같던 이 통화는 점차 그를 집요하게 잠식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피터의 자리는 조금씩 다른 누군가에게 내어주기 시작한다.

직장에서는 자신보다 더 유능하고 배려 깊은 '또 다른 피터'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연인과 친구들마저도 이전과는 다른 그 피터에게 더 깊은 신뢰를 보내고, 진짜 피터는 점점 그림자처럼 사라져간다. 그는 점점 육체적으로 쇠약해지고, 내면의 공허함과 무력감 속에 빠진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무책임함, 자기중심성, 외면했던 인간관계의 파편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고, 결국 ‘더 나은 자신’에게 삶을 완전히 넘겨주는 길을 택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피터는 병상에 누워 홀로 사라진다. 더 나은 자신이 현실을 살아가는 동안, 그는 잊혀진다. 이는 단순한 존재의 대체가 아니라, ‘자기반성 없이 살아온 자아’의 소멸이다. 인간은 결국, 자신이 외면한 삶에 의해 도태된다. 이 에피소드는 자아분열의 공포를 가장 현실적인 정서로 포장해 우리에게 경고한다.

⏳ A Little Peace and Quiet – 고요함이 초대한 종말

팸은 네 아이의 엄마이자 가정주부로, 끊임없는 소음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틴다. 아이들의 울음, 남편의 무관심, TV 뉴스의 불안한 세계. 그녀는 ‘조용함’을 절실히 원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우연히 발견한 고대 펜던트를 통해 신비로운 능력을 얻게 된다. “조용히 해!”라고 외치는 순간, 세상의 시간은 완전히 멈춰버린다.

처음엔 단순한 도피였다. 멈춘 세상 속에서 커피를 마시고, 조용히 책을 읽는 평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현실의 문제를 마주하는 대신, ‘정지’를 남용하기 시작한다. 갈등이 생기면 멈추고, 짜증나는 소리가 들리면 또 멈춘다. 그렇게 점점 현실을 직면하지 않게 되자, 그녀의 감정은 사람들과 단절되고, 관계는 고립된다.

그리고 마침내 TV 속에서 미국과 소련의 핵전쟁 위기를 알리는 방송이 터져나오자, 그녀는 본능적으로 다시 외친다 — “조용히 해!” 그 순간, 세상은 멈추고 핵미사일조차 공중에 정지해버린다. 평화를 얻었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 그녀는 그 고요 속에 자신 혼자 남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다시 움직이는 방법은 없고, 영원히 멈춰버린 세상에 홀로 고립된 채 살아야 하는 공포가 그녀를 덮친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멈춰선 아이들을 바라본다. 그들의 생생한 표정과 동작은 찰나에 머물러 있고, 그녀는 그들을 안아줄 수도, 다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다. 이 에피소드는 조용함이 평화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역설을 날카롭게 찌른다. 우리가 갈망하는 '쉼'이 진짜 휴식이 아닌, 인간관계의 단절과 현실 회피일 수 있음을 경고한다.

🎯 통제하려는 인간, 결국 혼자 남는다

이 두 에피소드는 방향은 다르지만, 인간의 통제욕과 회피본능이 불러오는 종말을 보여준다. 피터는 자기를 돌보지 않음으로써 자아를 상실하고, 팸은 세상을 멈춤으로써 관계를 상실한다. 그들은 모두 선택의 순간마다 ‘현실’을 외면했고, 결국 현실은 그들을 외면한다. 그 결과는 모두 같은 결론으로 수렴한다. 자기 삶을 책임지지 못한 인간은, 결국 자신이 만든 외톨이가 된다. 괴물도, 살인자도 없이도 이렇게 소름 끼치게 끝나는 이야기는 많지 않다.

📡 시대와 맞물린 공포의 실체

1980년대는 냉전과 핵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시기였다. ‘A Little Peace and Quiet’의 팸이 핵전쟁이라는 공포를 직면하는 장면은 단순한 서스펜스가 아니다. 당시 미국과 소련 사이의 긴장감은 극에 달했고, 일상의 한복판에도 전쟁의 위기가 침투해 있었다. 이 드라마는 그 시대 사람들의 무의식을 건드리며, ‘이 조용함은 진짜 평화인가, 아니면 정지된 죽음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동시에 ‘Shatterday’는 개인주의와 고립이 심화된 도시인의 자화상을 드러낸다. 겉보기에는 성공했지만, 실상은 감정적으로 텅 빈 피터는 ‘자기 자신’에게조차 외면받는 현대인의 초상을 닮아 있다. 타인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감정을 닫고 살아온 이들에게 이 이야기는 차가운 거울이 된다.

🧠 시청자에게 던지는 불편한 물음

이 두 편의 이야기는 시청자에게 단순한 오락을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본능적인 불안을 자극하고, 그 불안의 실체가 무엇인지 성찰하게 만든다. ‘더 나은 내가 존재한다면, 나는 지금의 나로 계속 살아갈 수 있는가?’ ‘모든 소음을 멈추고 싶지만, 정말 세상이 멈춘다면 나는 견딜 수 있을까?’ 이 드라마는 대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그 질문을 우리 내면에 던져놓고 사라진다.

이것이야말로 환상특급이 가진 가장 날카로운 미덕이다. 괴물이나 외계인이 등장하지 않아도, 우리의 내면을 쳐다보게 만들고, 우리 삶의 균열을 지적하며, 우리가 애써 외면해왔던 불편한 진실을 응시하게 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고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