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ealer – 기적은 누군가의 소유일 수 있을까?
거리에서 살아가는 사기꾼 리차드에게 어느 날 기묘한 기회가 찾아온다. 평소처럼 잡화점에서 물건을 훔치던 그는, 작은 주머니에 든 고대 유물처럼 생긴 ‘돌’을 발견하고 별 생각 없이 가지고 나간다. 그리고 얼마 뒤, 우연히 만난 병든 아이의 이마에 손을 얹자 아이가 놀랍게도 호전된다. 그는 처음엔 단순한 우연이라 생각했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점점 자신이 ‘치유자’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그의 삶은 빠르게 바뀐다. 거리의 사기꾼에서, 언론이 주목하는 기적의 인물로. 하지만 문제는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리차드는 이 능력을 점점 ‘자기 것’처럼 다루기 시작한다. 병을 낫게 해주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고, 사람들의 신뢰를 상품처럼 취급하며, 스스로 신의 대리인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돌은 점점 힘을 잃어간다. 치유의 효과는 약해지고, 그는 다시 과거의 자신으로 되돌아간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돌을 제자리에 놓으며 기적을 되찾길 바라지만,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에피소드는 묻는다. “당신이 가진 능력이 정말 당신의 것인가?” 기적은 순수한 마음 위에서만 작동한다는 것. 이 돌이 진짜 신비한 힘을 가졌는지, 아니면 그의 ‘마음’이 일으킨 것인지는 끝까지 설명되지 않는다. 그 모호함이 오히려 이 이야기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든다.
🧒 Children’s Zoo – 선택은 오직 아이의 몫
어린 리사는 항상 혼자였다. 엄마와 아빠는 그녀를 돌보긴커녕, 하루종일 서로에게 삿대질만 한다. 집은 소음으로 가득 차 있고, 리사의 방은 그저 고요한 피난처일 뿐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지우듯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길거리에서 우연히 ‘Children’s Zoo’라는 전단지를 발견하고, 그 안내를 따라간다.
그곳은 상상조차 못한 세계였다. ‘부모를 고를 수 있는 동물원’. 말 그대로, 아이가 자신에게 맞는 부모를 우리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곳이었다. 리사는 조용히 우리를 둘러보고, 한 쌍의 따뜻한 부부를 선택한다. 놀랍게도, 그 순간 그녀의 친부모가 철창 안으로 끌려간다.
이 장면은 말 그대로 충격이다. “왜 아이는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대한 블랙코미디식 대답이자, 현실에서 반복되는 부모의 무책임을 역으로 비틀어낸 상징이다.
리사는 처음으로 자신이 ‘사랑받아도 되는 존재’임을 느낀다. 짧은 에피소드지만, 이 감정 변화는 강렬하다. 어쩌면 가장 환상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 Kentucky Rye – 죄책감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술을 마신 채 퇴근하던 주인공은 실수로 사람을 치고 도망친다. 그는 혼란 속에서 도심을 빠져나오고, 한적한 길가의 바(Kentucky Rye)로 들어선다. 그곳은 이상하게 따뜻하고 안락하다. 마치 과거의 추억을 되살린 듯한 분위기. 사람들은 그를 환영하고, 술잔은 끊임없이 채워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창밖은 보이지 않고, 출구도 없다. 손님들은 그에게 점점 냉소적으로 변해간다. 그는 이곳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이미 ‘그날’ 죽었다는 걸 알게 된다. 바는 그가 만든 죄의 공간이자, 영원한 형벌이다.
‘Kentucky Rye’는 단순한 유령 이야기나 음주 경고가 아니다. “책임을 회피한 이에게는 어떤 결말이 주어지는가?” 이 질문을 깊고 무겁게 풀어낸다. 결국 가장 무서운 처벌은 법이 아닌, 자기 자신이 끝까지 마주하는 죄책감이다.
🧠 세 편을 잇는 하나의 거울
이 세 이야기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선택과 책임”이다.
- 리차드는 능력을 선택했지만, 책임지지 않았다.
- 리사는 부모를 새로 선택했고, 사랑받을 권리를 스스로 찾았다.
- 뺑소니범은 책임을 외면했지만, 그 죄는 끝내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환상특급은 언제나 그래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초자연을 통해, 가장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는 쇼. 이번 에피소드 세 편도 예외는 아니다.
🎯 총평
《Healer / Children’s Zoo / Kentucky Rye》는 각각의 색깔이 다르면서도, 공통적으로 인간의 내면과 도덕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1985년에 방영되었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들. 현대의 우리도 여전히 같은 질문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말 책임질 준비가 된 선택을 하고 있는가?”
작지만 묵직한, 이 세 편의 이야기들은 여운이 오래 남는, 어른을 위한 우화다.